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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글] 기술 혁신과 일자리 변화: 기술 비관론에 대한 경계_박민재 교수

2018.12.28

기술 혁신과 발전 결과에 따른 노동력 절감을 통한 효율성 개선 속도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기술 변화가 일어나면 일자리 감소가 먼저 나타나고 그 다음에 일자리 창출이 따라온다. 일자리는 생산 및 서비스 활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동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이 자신의 생산물에 필요한 중간재를 직접 생산할 때와 외부에서 사서 조달할 때에 해당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 형태는 일반적으로 같지않다. 기업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지는 바로 최종생산물을 생산하기까지 각 생산 단계가 갖는 거래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생산방식의 거래비용을 혁명적으로 낮추었다. 특히 외부자원을 밖에서 사올 때의 거래비용을 크게 낮추었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형 고용계약 형식이 늘어나고 있다. 기술진보가 자원의 전유성 (Appropriability)과 거래의 복잡성을 감소시킴에 따라 기업 내부에서 정규직을 통해 처리하는 것보다 외주, 임시직 등을 활용할 때의 거래비용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취업 형태가 다양화하고 비전통적 고용계약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주문형(on-demand) 거래의 확산으로 임시직, 파견, 재택근무, 파트타임 등 다양한 취업 형태가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 진다.


역사적으로 급진적인 기술 변화는 사회 불안과 사회 구성원의 불만을 야기한다. 영국의 중·북부 지역 직물공업지대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Luddite movement, 1811~1817년)이 그 예다. 산업혁명이 진행돼 직물 공업에 기계가 보급되는 한편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으로 경제가 불황에 빠져 실업자가 증가하고 물가가 나날이 오르자 근로자들은 실업과 생활고의 원인을 기계 탓으로 돌리며 기계 파괴 운동을 일으켰다. 이후 기술 혁신에 대한 반응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기술 변화로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기술의 급진적인 변화는 사회 불안의 잠재적 요인이 되어 왔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칼 프레이 교수는 최근,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 중 약 47%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MIT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이런 추세를 “기계와의 경쟁”이라고 압축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일자리 붕괴를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디지털 기계를 파괴하는 제2의 Luddite movement를 벌일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그러나 1950년대의 급속한 기계화와 자동화가 고용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당시 국제노동기구 (ILO) 사무총장은 “과거 경험에 비춰 볼 때 기술 혁신이 세계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고 믿을 이유가 없다. 기술 혁신이 일부 부문의 일자리를 감소시키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다른 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전체 고용을 증가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횡행하던 기술 비관론(techno-pessimism)에 대응한 ILO의 1972년 보고서는 “기술 변화로 인한 고용 하락 효과는 대부분 두려워했던 것보다 미미했다”고 밝혔다. 1960년대 미국에서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설립한 국가위원회가 이러한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1960년부터 2015년까지의 고용률을 살펴보면 남녀의 고용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해 왔지만 전체 고용률은 55년간 10% 포인트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30~4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세상의 거의 모든 직업이 컴퓨터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30~40년 전의 직업과 현재의 직업 사전을 비교해 보면 사라진 직업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직업 사전의 항목 수가 과거보다 줄어든 적은 없었다. 이를 볼 때 기술진보의 결과 없어진 직업보다 새로 생긴 직업이 더 많은 사실도 알 수 있다. 맥킨지가 2015년에 미국 내 802개 직업에 대해 직무를 분석하고 자동화에 의한 대체가능성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800개 직업의 2,000개 작업 중 45%(2조 달러어치의 업무)가 자동화 가능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중 현재의 기술로 완전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5% 미만에 불과했다. 전체 직업의 50% 정도는 아직 컴퓨터나 로봇이 속수무책이고, 45%는 직무 일부를 자동화할 수는 있지만 전면적인 자동화는 어려운 영역이라면, 역설적으로 컴퓨터 혹은 로봇과 협업해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기도 하다.


기술 변화는 상품과 서비스 생산의 전통적 가치사슬을 해체하고 있다. 공유 경제와 같은 가치사슬 해체는 비즈니스 모델을 다양화하고 경쟁 위계를 뒤흔든다. 기술진보가 직무, 직업,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그것이 업무자동화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자동화에 의한 ‘대체’는 어떤 직무의 대량 소멸을 의미할 수 있다. 직무보다는 훨씬 적은 수이겠지만 직업을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 규모의 고용 파괴를 의미하진 않는다.

 

하나의 직업이나 한 사람의 일자리는 여러 가지 직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무가 대체된다고 해서 그만큼 일하는 시간이나 일하는 사람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같은 생산량을 생산하는 데에는 적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새로이 창출되는 수요로 인해 더 많은 생산량을 생산할 필요가 있게 되고 그에 따라 노동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 역사적 과정에서 기술진보는 이러한 방향으로 작동했다.


기술발달로 인해 일자리에 일어나는 변화의 요체는 ‘일자리의 수(고용)’라기보다는 직무변화이다. 하지만 자동화가 용이한 직무, 즉 정형화(routinize)하기 용이한 직무로 이루어진 직업들은 수요가 과도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바로 이때, 정부의 제도와 정책과 조직의 적응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확인되고 있다. 같은 교육수준을 요하는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단순 기능을 직무로 하는 직업의 일자리는 감소한 반면 대인관계를 직무로 하는 직업의 일자리는 증가했다. 증가의 정도를 보면 전반적으로 전산화하기 힘들고 최근의 기술 발달과 보완적인 직무를 가진 전문직, 기술직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단순 노무직 또한 전산화하기 힘들며 최근의 기술 진보와 보완관계를 가진 직업군도 고용이 증가했다.


요컨대 기술진보는 일차적으로 현존하는 직업들의 ‘직무’에 현저한 변화를 초래하고 이를 통해 직업과 일자리에 영향을 초래한다. 일부 일자리를 대체하고 창출하겠지만 직무의 대체/보완성에 따른 직업 내 직업 간 기회와 보상 격차를 확대하는 영향이 지배적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용/근로형태에 변화가 초래되고 새로운 노동 규범 설정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소득분배, 교육 등에 관한 도전이 지속적으로 제기 될 것이다.


이것이 사회의 기본적인 진화 원리이다. 속도에 대한 조정은 외부적 개입에 의해 발생하겠지만 방향은 정해져 있다. 이러한 변화의 큰 강줄기를 이해하고 기술의 진보에 대한 막연한 비관론을 떨쳐 버릴 필요가 있다. 제레미 리프킨이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강조하듯 기술 발전이 인간의 노동 시스템 자체를 붕괴 시킨 다기 보다는‘가치 사슬의 재구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박민재 교수
mjpark2@assist.ac.kr